
16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가수인 밥 딜런이 선정되었다. 물론 밥 딜런이 몇 차례 후보로 거론된 사실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수가 ‘문학’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원회는 미국 대중음악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에게 문학상을 수여하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문학도로 보냈으며 애서가보다는 탐서가로 분류될 때가 많을 정도로 보수적인 위치에 있는 필자도 밥 딜런의 수상 소식에 이렇게 생각했다.
" 가수가 왜?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도 받지 못했던 상을 밥 딜런에게 주는 것이 옳은가, 혹은 헤밍웨이가 받았던 상을 밥 딜런이 받는 것이 옳은가 같은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노벨상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며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학도로서 필자는 ‘문학상’이 오로지 내가 사랑하던 책을 벗어나버린 것에 다양한 거부반응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문화콘텐츠 연구자로서 필자는 ‘문학상’의 문학이 시대에 맞춰 확장하려 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 상은 밥 딜런이 받았지만 왠지 필자의 연구 분야들이 인정받은 것 같았다. 어쩌면 이제 수많은 각본가와 작곡가들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뜨겁게 떠오를지도 모른다.

文, Literature. 조금 거칠게 말해서 인간이 문자외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을 모르는 이상 세상 모든 것은 곧 文이 이다. 문자로 썼거나, 써질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산업 시대를 지내며 분업의 삶을 살았다. 많은 것들은 전문화를 위해 분열했다. <모던 타임즈>의 컨베이어 벨트 노동자들처럼. 그리고 정보 시대에서 전문화는 다시 통합되고 있다. 다양한 전문화의 결과들을 모아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에 인쇄되어야만 책이라면 당장 E-book과 관련된 어플리케이션이 설치되어 있고, 전화보다 음악과 소설을 더 많이 제공하는 필자의 스마트폰과 다른 이들의 스마트폰에서 열광적으로 지지를 받는 작가와 필자들은 문학가가 아닌 것일까?
지금까지 시대는 매체와 표현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는 아마 우리가 물리적인 거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와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빛의 속도로 교류한다. 중동의 사태를, 미국의 대선을, 유럽의 경제를 그 곳의 사람들과 큰 차이 없이 알게 된다. 문학도 언제까지나 종이에 잉크로 인쇄한 곳에 갇혀있을 수는 없을 터이고 소설이 등장한 것처럼 언제까지나 시와 소설만이 위대할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의 갈래는 시와 소설이 아닌 서정과 서사라고 하지 않는가.
밥 딜런은 이런 서정의 영역에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글 ‘text’을 원재료로만 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각본가들과 작곡가들은 충분히 문자 예술을 자신들의 매체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분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당장 순수하게 자신의 역량만으로 예술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많은 예술품은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기술은 발달했고, 문자 예술은 오래된 예술의 본분을 지닌 채 다양한 기술 속으로 스며들었다. 반드시 공연장에 가야지만 음악을 듣고, 극을 볼 수 있던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좋은 문학적 표현을 통해 뛰어난 곡을 쓴 사람은 왜 문학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일까?

교육의 질은 올라가고, 정보의 교환은 빨라진다. 이제는 인쇄 문자보다 데이터 문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언젠가 웹 아카이브가 모든 인쇄물을 대체하게 되는 시대가 온다면 책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팔릴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는 그 때도 오로지 예술이 매체에 종속되어야만 그 순수성을 지킨다고 주장해야 할까.
문학은 확장된다. 사람이 문자를 사용하여 생각하고, 표현하는 이상 매체를 초월해 문학은 인간의 상상력과 함께 뻗어나갈 것이다. 문학의 순수를 수호하고, 본령을 어기지 않는다는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며 문학도로서의 필자도 그러한 사상을 지지하고 싶다. 하지만 연구자로서의 필자는 지금 탐탁찮은 마음을 지닌 채 문학의 확장을 선언하는 밥 딜런의 수상에 박수를 치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나라에서 가치는 돈과 대중의 지지로 완성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그것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본이 집결되고, 인재가 존재하며 대중이 지지해준다면 우리는 그 곳에서 새로운 가치가 싹 터 열매 맺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노벨 위원회의 문학상 결정은 그러한 새로운 가치에 비치는 볕이다.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하지만 설사 이 번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은 필요한 시대다. 논쟁을 위한 장을 열어준 것만으로도 필자는 밥 딜런의 수상이 가치롭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교육과 지식에 대한 많은 시스템들이 변화하고 있다. 9할 이상이 대학을 진학하고 배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도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웹은 수많은 지식을 제공할 것이고, 노벨문학상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영역에 대한 가치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노벨문학상은 누가 받게 될까? 조지 루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문학상을 받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문학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글로 이루어진 수많은 매체를 포괄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산업 시대가 멀어지고 정보 시대의 중심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아쉽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문화도 변화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순수성과 예술의 가치를 위해 밥 딜런의 수상을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 이러한 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밥 딜런의 수상이 칭송받기만 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난받기만 할 것도 아니다.
예술은 영원할 것이지만, 그 그릇은 언제나 시대에 맞춰 변화했다. 그리고 그릇이 변화한다면 당연히 담는 방식도 변화한다.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 여전히 사과라면 어떻게 깎았고 어떻게 담았던 간에 최고의 사과는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의 노벨 문학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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