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용한은 연세대학교 사학과, 동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경희대학교와 광운대학교, 충북대학교, 공군사관학교 등에서 출강했으며,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대의 개혁가들》 , 《명장 그들은 이기는 싸움만 한다》 등이 있다.
사무라이 후예는 왜 패배했나
출처 : EBS 비즈니스 리뷰

안녕하세요. 올댓스피커 입니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경영 현장이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오늘날, 어떻게 하면 살아남는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은, 역사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임용한 소장님과 함께 전쟁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경영의 인사이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수천수만 명의 병사를 이끈 명장들과 전쟁의 다양한 사건의 맥락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경영인들에게
인재 육성 및 관리, 경영인의 자세 등 기업 경영 방식과 기업문화 형성의 교훈을 전해 드립니다.
일본군이 맹신한 '사무라이 정신'
이제 본격적으로, 1940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오늘의 주제 <사무라이 후예들은 왜 패배했나>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여러분은 혹시 '반 자이 돌격'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1941~1945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이 "천황폐하 만세"라고 외치며 돌격했던 데에서 유래한, 일본어로 '만세'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요.
현대전인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왜 이렇게 무모한 돌격을 했던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일본 사람들이 전통이라 여기며 굉장히 좋아하는 '사무라이 문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사무라이 정신의 상징인 이 일본도가 지상전에서는 만에 하나 쓸모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투기를 타고 올라가는 항공기 조종사들까지도 일본도를 차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좁은 전투기의 조종석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생명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 위험한 물건인데요.
이처럼 위험한 물건이고 하늘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인데도 너무나도 일본도를 차고 올라가고 싶어 해서, 나중에는 계급 제한까지 걸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일본군이 믿었던 것은 칼이 아닌 사무라이 정신인 것인데요. 이 무적의 정신으로 현대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 과달카날이라는 섬이 있습니다.
일본군이 승승장구하면서 태평양을 거의 휩쓸고 마지막 남은 곳이 호주였고, 1942년 5월에 소수의 일본군 부대가 과달카날 섬에 진주해서 호주 공습의 전진기지로 삼고자 했습니다. 일본군이 호주까지 침공하게 되면 연합군 측에서는 태평양의 기반이 완전하게 없어지게 되기 때문에 반격을 모색했고, 이 소식을 들은 일본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그에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파견하게 되는데요.
그 때 선택된 이치키 기요나오 대좌는 관동군 중에서 최고의 장교라고 꼽히던 인물이었습니다.
(중략)
오늘 들려드린 사무라이 정신을 맹신한 일본군의 과달카날 전투 이야기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으셨나요?
이처럼 역사 속 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평소에도 무한한 훈련과 자기 혁신을 통해 진정한 성공 일궈나가야 하겠습니다.
유익한 이야기 전해주신 임용한 소장님의 더 많은 #역사 #전쟁사 #한국사 #고전 #인문경영 #위기극복 #리더십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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